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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카츠] 하고 싶은 말
유리온아이스 전력 60분 주제 : 「하고 싶은 말」

“유-리!”
“으아악!?”

잠깐 생각을 정리하려 링크장에 들렀다. 항상 신던 스케이트화를 신고 발이 이끄는 대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빅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와 놀란 나는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 뒤로 넘어졌다.

“유리, 괜찮아? 갑자기 넘어지고.. 무슨 일 있어?”

이게 누구 때문인데.. 한숨을 쉬고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무언가 말해주길 기다리는 모습에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에게 말할 용기가 없는 것도 이유였다.

“무슨 일 있구나?”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나에게 말해줄 순 없는 거니?”
“그게, 나중에, 나중에요.”

빅토르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머리를 살짝 쓸어넘기며 얼마든지 기다려주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었다. 가끔은 나를 너무 챙겨줘서 부담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말이죠,
조금 걱정돼요.
빅토르가 나를 떠났을 때.
내가 잊지 못할까 봐.

빅토르가 없었던 평범하고 우울했던 생활이,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아요.



링크에서 내려오면서 입술을 조금 물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내가 한심했다. 시간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랑프리 금메달을 끝으로 은퇴. 이것이 내가 정해둔 목표니까. 운동화로 갈아신고 빅토르와 함께 링크장에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몸 전체에 와 닿았다.

“유리.”

겨울에 막 접어든 추위에 몸을 잠깐 떨었다. 그리고 그의 부름에 걸음을 멈춘 순간,

“…아. 눈이다.”

첫눈이 눈앞에서 떨어졌다.

“Wow, 첫눈을 맞으면서 돌아가는 길이라니! 로맨틱하지 않니? 유리, 우리가 첫눈을 맞고 있어!”
“네, 네. 그렇네요.”

나는 조금이라도 더 눈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는 것은 사실 핑계였다. 그를 바라보았다간 내 속마음이 들킬까 봐 조금이라도 더 숨기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한 짓이었다. 조금 건성으로 대답해버린 것이 마음에 걸려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을 때 보이는 것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빅토르였다.

“……빅토르?”
“유-리-, 아까부터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나 상처받는다?”
“아, 아니…, 아니에요..!”
“너무해, 유리-.”

특유의 축축 늘어지는 목소리로 내 등에 엉겨 붙는 빅토르를 떨쳐내지 못하고 질질 끌며 걸음을 옮겼다. 눈을 맞으며 길을 걷다 보니 아까 링크장에서 나왔을 때 나를 불렀던 이유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화제를 돌려보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저, 빅토르. 아까 저를 부른 이유가 뭐예요?”
“으응? 내가 불렀었나?”
“…….”
“……농ㄷ,”
“아, 됐어요. 취소, 취…, 읍!?”
“취소는 안 되지! 꼭 해야 할 말이었거든.”

조금은 진지해진 목소리에 가만히 눈만 깜빡이며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빅토르도 나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되지 못해 혼란스럽고 복잡한 표정. 그리고 이내 그의 입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유리는, 내게 하고 싶은 말 없어?”
“네?”
“코치로서의 나, 선수로서의 나.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나. 내가 너에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그건 전에 말했잖아요.”
“유리도 참, 내 말의 의도를 정말 모르겠어?”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는구나.”

서서히 다가오는 빅토르의 얼굴, 내 입을 손으로 막고는 그의 손등에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맞추고는 떨어졌다.

“유리에게 한 사람의 빅토르로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그, 그게. 그러니까…….”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점점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유리.”
“꼭 들어야 해요?”
“응. 듣고 싶어. 유리에게 직접.”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요?”
“내가 원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유리,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줘. 난 괜찮아.”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빅토르의 모습이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하지만 조금은 평소와 다른, 씁쓸한 웃음이 있었다. 그 모습에 나 자신에게 바로 질문했다. 그를 어떻게 생각했지? 어떻게 생각했더라?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잔뜩 떠다니면서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하나로 다 설명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꼭꼭 숨겨왔던 말. 나는 내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려놓고 눈을 꾹 감고 소리쳤다.



“좋아해요!”



저질렀다….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았고 고개는 점점 푹 숙여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망함에 얼굴이 다시 빨개지고 있었고 귀까지 화끈거렸다.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하하, 여, 역시 없던일로..”
“정말 좋아해, 유리.”

전에는 닿지 않았던 입술. 이번에는 닿았다. 촉촉한 빅토르의 입술이 꺼칠꺼칠하게 일어난 내 입술에 맞닿았다. 그는 그때처럼 내게 망설임 없이 다가와 안기듯 팔을 두르고 입을 맞춰왔다. 그리 길지 않았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최고야, 유리.”
“…감기 걸리니까.. 빨리 들어가요.”
“정말 좋아해. 우리 손 잡고 갈까?”
“더우니까 조금 떨어져요..!”
“너무해, 유리.. 그럼 우리 술 마실까?”
“No...!”
“유리!”

얼굴을 감싸고 먼저 달려 나왔다. 아주 부끄럽고 쑥쓰러웠지만 빅토르에게 내 진심을 전했다. 온전히 하고 싶었던, 언젠간 말하고 싶었던, 좋아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어서 무겁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벅찬 마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같은 곳, 같은 시간에서 같이 눈을 맞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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