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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몬세나] 너이기 때문에.

연습도 없는 오늘, 오늘따라 기분이 별로였다. 온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고. 원래라면 가만히 있겠지만, 오늘따라 누가 건들기만 해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것 같았고 심지어는 울 것 같기도 했다. 꼴사납게 학교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기에 꾹꾹 눌러 밑으로 가라앉혔다. 난 형제도 없을뿐더러 무언가를 진지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아빠와 엄마밖에 없었다. 하소연하다 보면 어리광 같고 나도 고등학생이고 곧 성인이 될 테니 다 컸다고 할 나이인데 부모님께 마냥 기댈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혼자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니 점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가는데 아닌 척 억지로 버티려니 뭘 어떻게 할 수 있어야지. 매일 생각에 잠겨있고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다. 그렇게 다음 수업을 준비하려는데,

“어이, 세나.”

쥬몬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 점점 그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고 내가 부담스러워 그를 피했으니까. 다 내 잘못이었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그와 어울리는 것을 멀리하고 혼자 있었으니까. 나는 가만히 몸을 돌려 그가 서 있는 쪽을 향했다.

“쥬몬지군…?”
“너 요즘 나 피하냐?”
“내가 왜 쥬몬지군을 피해..”

나는 말끝을 흐렸다.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었다. 이미 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물어보고 있었으니까. 다 알고 있으니 내게 진실을 말해달라는 목소리였으니까.

“그런데 왜 넌 내 눈을 못 쳐다보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을 못 쳐다보는 게 아니라 안 마주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꾸욱 눌러 참았지만 당장에라도 쥬몬지군의 얼굴을 본다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혼자서 끙끙이냐고.”

그는 주먹을 꽈악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한다면 큰소리를 치거나 여차하면 폭력까지 행사할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내 귀에 들린 그의 대답은 나를 상당히 흔들어 놓았다.

“왜 나는 안 되는데.”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만 던져주고 떠나려는 쥬몬지를 보니 아무래도 그를 잡아야 할 것 같아 손을 뻗었지만 발은 바닥과 붙어버린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팔만 뻗어봤자 이미 내게서 멀어진 쥬몬지군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왜 나는 안되냐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게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뒤집어버린 쥬몬지는 끝내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되었던 쿠로키와 토가노가 내 안부를 물으러 다가왔지만 난 억지로 웃으며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수업도 빠지지 않고 착실히 잘 들었던 쥬몬지가 없다. 수업이 시작할 때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처음 내뱉는 질문은 하나같이 나를 향해 있었다. 쥬몬지는 어디갔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모른다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수업 중에도 그의 말의 뜻을 계속 곱씹느라 선생님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종례시간,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별일이네. 너희 미식축구도 하고 같이 다니면서 많이 친해진 것 같았거든. 쥬몬지, 미식축구부에 들어간 이후로 수업도 안 빠졌었고. 서로 어디 있는지 아는 줄 알았는데.”

그때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했다. 그리곤 다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고 난 쥬몬지를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찾아주겠다는 쿠로키랑 토가노에게 괜찮으니 먼저 가라고 말하고 혼자서 교실을 뛰쳐나왔다. 학교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왜 나는 안되냐는 쥬몬지군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애가 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숨을 고르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와 문에 머리를 박고 중얼거렸다.

“쥬몬지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너까지 왜 그래…….”

이제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정신도 차릴 수 없었고 두 다리로도 제대로 설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책상다리를 잡고 겨우 일어나 바닥에 앉았다. 바닥에서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드르륵,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들어왔고 고개를 들자 쥬몬지가 보였다. 내가 찾던, 아무리 찾아도 볼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이.

“ㅅ, 세나, 너..!”
“쥬몬지..”

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막 화내고 소리치고 때리고도 싶었는데 눈물만 울컥 차올라 터져 나오려던 말을 막았고 눈물만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쥬몬지는 갑자기 들어오자마자 바닥에서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나를 보고 달려와 꼬옥 안아주었다. 난 쥬몬지군의 등을 힘없이 때리면서 마치 애라도 된 것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왜 이제서… 왜 이제서야, 네가 아니면 난...”
“…미안. 미안해, 세나. 내가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쥬몬지는 더욱 나를 꽉 안아주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주려는 걸까. 그의 품은 매우 따뜻했지만 반대로 쓸쓸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오랫동안 가지 못해서 텅 비어버린 그의 외로웠던 품속이었다. 나도 덩달아 그를 꽈악 안았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세나,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 마.”
“쥬몬지군은 아무 잘못 없어.”
“아니. 널 혼자 아프게 놔둔 건 내 잘못이야. 이렇게 혼자서 아파했을 줄은 몰랐으니까.”

다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최대한 제대로 말하기 위해 숨을 고르며 조금씩 토해내듯 말했다.

“…너무 힘들었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였어. 쥬몬지군을 보면 내 불안한 마음이 들킬 것 같아서 피했어. 더 알려고 하면 내가 너에게 화낼까 봐, 갑자기 눈물이 흘러 꼴사납게 울어버릴까 봐 피했어.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떠안는 거… 너무 무서웠어. 너무 아프고 이제는 지쳐버렸어.. 이제 어떡하면 좋지? 쥬몬지군.. 난 하나도 모르겠어.”

다 놓쳐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쥬몬지에게 매달리듯 내 이야기를 했다. 날 한심하게 바라볼 주위의 시선이 두려웠고 항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가 되려고 몇 배는 노력했기에 원래 내가 생각하던 내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게 무서웠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했잖아. 왜 나는 안되냐고.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위를 보라고. 너만 있는 줄 아냐? 나, 쿠로키, 토가노, 옆 반에는 몬타와 코무스비도 있어. 다 알고 있었어. 네가 힘들어하는 것쯤은. 난 네가 먼저 나에게 기대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지만 너한테 화낼 수도 없잖아!”
“화내고 싶으면 내! 지금처럼 울고 싶으면 울어! 꼴사납냐? 그럼 내 품에 숨어. 같이 화내고 울어줄 수도 있어. 난 다 해줄 수 있는데 왜 몰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내 주위에 가장 먼저 보일 사람은 쥬몬지였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나를 위해 희생해줬던, 기다려줬던 남자. 내가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존재.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쥬몬지를 바라봤다. 그는 살풋 웃어주며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 손으로 닦아주었다.

“넌 애인 뒀다 뭐하냐. 내가 닳아 없어지기라도 해?”
“…….”
“세나, 난 항상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만 봤어. 넘어지고 다쳐도 계속 일어나서 달려가는 모습을. 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힘들 때는 내가 이끌어줄게. 내가 앞장서서 널 내 앞으로, 저 앞으로 보내줄 테니까.”

난 그의 품에 고개를 묻고 그를 세게 껴안았다. 아직도 훌쩍임이 멈추지 못했지만 쥬몬지는 나를 품에 안고 계속 토닥여줬다. 그리고 평소보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라고 말해주며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점점 몸의 떨림이 멈추고 있었다. 항상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주위에는 모두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바로 앞에 쥬몬지군이 있다는 것을.

“이제 괜찮아.”
“넌 그렇게 웃는 모습이 좋다고.”
“응. 그건 쥬몬지군도.”
“안심해. 난 누구처럼 울어서 부어버릴 일은 없으니까.”
“푸핫, 쥬몬지군..!”

내 눈에 고인 눈물을 조심히 닦아준 지 얼마 안 됐는데 그새 장난을 치려는 쥬몬지군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안심한 미소를 보여주는 쥬몬지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 미소를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을 미소,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을 웃음소리.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쥬몬지 카즈키이기 때문이 아닐까.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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