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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오이] 알고 있었어.
Written by. 나인
피곤하다. 억지로 웃는 것도 지쳐버리는 날이다. 평소라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며 맞추기 전까지 놔주지 않았을 텐데 입을 열기도 힘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든 기운을 다 뺏겨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배구부 연습은 항상 나가야 했고 몰래 빠진 적도 없었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오는 거냐, 망할카와!!! 늦었잖아!!!!”
“미안미안~ 오이카와 씨는 일이 많아서~”
“일은 무슨, 또 여자애들이랑 노느라 늦었겠지.”
“어… 그래도 평소에 늦으신 적 없지 않아요? 대부분 이와이즈미 선배랑 같이 오셨잖아요.”
“몰라. 오늘은 안 보였어. 어이, 빨리빨리 안 움직여?!”
“네, 네~ 갑니다~”
들어오자마자 역시나, 말도 없이 사라졌던 것에 화가 난 이와쨩은 쉬지도 않고 나를 갈구고 있었다. 억지로 하하 웃어주고 말장난도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준비 운동이 끝났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1군 멤버들과 연습시합을 했다. 연습시합답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 내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연습 시간이 조금씩 지나갈수록 걱정은 배로 늘어났다. 얼굴은 태연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손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 찼다. 최대한 아닌 척, 평소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이카와!!!”
그렇게 결심하기 무섭게 실수를 해버렸다. 또 한눈을 팔아버렸다. 내가 토스를 올려주었어야 할 공은 이미 바닥에 닿아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왜 올려주지 못했을까,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첫 실수부터 연달아 서브미스, 올려준 토스가 너무 높거나 낮아서 치기 힘들었다는 말, 나로 인해 손발까지 맞지 않게 되어버리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만 포기할 때도 됐는데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나는 계속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토스와 모든 공격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했다. 하늘도 야속하지, 오늘은 죽어도 안 되는 날인가. 계속되는 실수에 감독도, 이와쨩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ㅇ…….”
“한 번 더.”
“그만둬. 여기까지 했으면 됐어.”
이와쨩은 내 어깨를 잡아 돌려 멈추게 한 후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니라고. 난 아직..! 오늘은 무리라고 생각한 감독도 이와쨩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필사적으로 코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설득하려 했다. 이미 내 얼굴을 보고 있지 않던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가보자. 응? 이번엔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만하랬잖아.”
나는 이와쨩의 반응에 조금 몸을 떨었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내 생각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움츠러드는 내 모습에 그는 조금 풀어져 있었다. 그 틈을 놓칠세라 그에게 빌듯이 호소했다.
“이와쨩, 제발….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냥 나갈 테니까.”
이와쨩은 내 말에 놀란 것 같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성공할 때까지 하겠다고 악착같이 몰아붙여서 항상 내가 아닌 이와쨩이 화를 냈다. 제발 그만 하라고, 더 해봤자 안 될 거 뻔히 아는데 몸 혹사하지 말고 쉬라고. 그렇게 화를 내면 나도 같이 욱해서 싸웠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간절했기에 한 번만, 마지막 기회라도 주길 바랐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내게 건네진 볼은 올려졌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실패했다. 허무하게 떨어진 공의 마찰음은 나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줬다. 그걸 바라보는 감독, 이와쨩이나 맛층, 킨다이치, 쿠니미, 하나마키까지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실패할 거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대하게 했다. 이번엔 가능하지 않을까, 이다음엔 기필코,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러한 자기최면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버텨온 것도, 힘든 연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난 이미 실패했고 약속한 대로 코트에서 나와야 했다. 짐을 챙기고 체육관을 나왔다.
“하아, 나와 버렸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너무 분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가라앉히며 교실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이 이렇게 편안하고 마음이 놓이다니, 조금 놀라웠다.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관심과 기대를 받아오다 혼자만의 세상으로 돌아오니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물론 내일 몸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갈 테지만 말이다.
“야.”
“와… 나 방금 환청이 들렸ㅇ, 으악! 이와쨩?!”
갑자기 들렸던 이와쨩의 목소리에 ‘한참 연습 중일 텐데 여기에 어떻게 있어-.’ 하며 몸을 돌리자마자 보이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인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뭘 그렇게 놀래?”
“여, 연습은?”
“맨날 네가 올려주는 공으로 연습하는데 너 없으면 되겠냐? 감독한테 말하고 나왔어.”
“아, 안돼. 빨리 돌아가, 이와쨩.”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멍청아. 너 없으면 못 한다고.”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떨어진 가방을 주워 창가에 가까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억지로 웃어 보였다.
“이런 적 되게 오랜만이다, 그치? 아~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둘만 있으니까 바라볼 사람은 이와쨩 하나로 충분할 텐데,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난 너를 대할 때도 항상 가면을 쓰고 있던 걸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생긴 죄책감이 그의 시선을 피하게 만들었다.
“억지로 웃을 필요 없어.”
“뭐?”
“다른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너와 나 둘뿐인데 숨길 필요 없다고.”
이런 말을 원했던 걸까. 나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숙였다. 더는 웃을 힘도, 거짓말을 할 힘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나를 그동안 가장 많이 봐왔고 가장 신뢰하고 있을 사람은 내 바로 앞에 있는 이와쨩인데. 가까운 친구도 믿지 못하면서 누구를 믿는다 했던 걸까.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와쨩…, 나 이와쨩한테 거짓말했어. 나 전혀 괜찮지 않아. 너무 힘들어. 몸이 너무 무겁고 억지로 웃는 것도 이젠 지쳐버렸어. 나 어떡해?”
결국, 기댈 곳은 이와쨩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해줘도 상관없었다. 한심하다고 욕을 해도, 위로의 말을 건네도 상관없다. 그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면 되는지 묻는 거냐?”
“…….”
“진짜 바보구나.”
“…….”
“어이, 오이카와.”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의 얼굴이 조금만 더 다가오면 나와 닿아버릴 것처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쨩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이와쨩은 자신의 이마를 내 이마에 맞대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엑, 그건 억지잖아.”
“너보고 다 참으라고 한 적 없어. 싫으면 말해. 답답하면 말하고. 짜증 나면 실컷 짜증 내. 울고 싶으면 울어!”
“…….”
“지금 그거, 넌 아무것도 몰라. 뭐 이런 거냐?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화나는 거야. 너만 큰 짐 짊어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데 알았다면서 제자리걸음이냐? 너도 말하고 싶은 거 말하고 하고 싶은 거 해. 바보같이 억지로 참아 손해 보면서 웃지 말고. 참, 특히 나한테는 네가 하는 거짓말 하나도 안 통하니까 다신 할 생각 마라.”
그의 말은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틀린 것 없이 다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나를 더욱 용기 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조금씩 그의 입술로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려 했을 때 이와쨩이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그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몸을 조금 떨었다. 그대로 이와쨩에게 몸을 맡기듯이 팔을 들어 그의 목에 둘렀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이와쨩은 피식 웃으며 한쪽 팔을 내 허리에 둘러왔고 한쪽 팔은 내 목 뒤를 감쌌다. 내가 그의 힘에 못 이겨 몸이 자꾸만 뒤로 가서 창가 선반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읏…. 이, 이와쨩.”
“아, 미안. 조금 셌나.”
“보통 셌어? 거칠다 못해 아팠다구.”
“너무 느리게 오는 게 좀 짜증 나서.”
“분위기 낸거라구..! 분위기 있게!”
“…….”
내가 말을 하자마자 부드럽게 내 턱을 감싸 올리는 그의 손길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마, 눈, 코, 입술. 한 번씩 길게 머물러주었다. 평소 애정표현이라면 질색을 하던 이와쨩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천천히 눈을 떴다.
“ㅇ, 이와쨩, 오늘따라 애정표현 너무 잘해준다.. 아까 화 안 내고 나 말 잘 들어서 그래? 자주 이래도 돼?”
“뭐라는 거야, 망할카와. 오늘 네 생일이니까 서비스해주는 거라고. 다른 날엔 어림도 없어.”
“……알고 있었어?”
“내가 너랑 몇 년째인데.”
“이와쨩…!”
“윽, 알았어. 알았다고..! 숨 막히니까 목 조르지 말고 놔!!!”
나는 그의 말에 감동한 나머지 그의 말을 더 듣지 못하고 꼬옥 껴안았다. 내 최고의 선물이야.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 축하받지 않아도 돼. 나는 그의 품에서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축하는 받아야지. ……생일, 축하해.”
“하하, 그렇네! 이와쨩한테는 받아야지. 정말 고마워, 이와쨩.”
나는 이와쨩 덕분에 오늘 하루 중 최고로 밝게 웃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기 때문인지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또, 그 외의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Written by. 나인
피곤하다. 억지로 웃는 것도 지쳐버리는 날이다. 평소라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며 맞추기 전까지 놔주지 않았을 텐데 입을 열기도 힘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든 기운을 다 뺏겨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배구부 연습은 항상 나가야 했고 몰래 빠진 적도 없었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오는 거냐, 망할카와!!! 늦었잖아!!!!”
“미안미안~ 오이카와 씨는 일이 많아서~”
“일은 무슨, 또 여자애들이랑 노느라 늦었겠지.”
“어… 그래도 평소에 늦으신 적 없지 않아요? 대부분 이와이즈미 선배랑 같이 오셨잖아요.”
“몰라. 오늘은 안 보였어. 어이, 빨리빨리 안 움직여?!”
“네, 네~ 갑니다~”
들어오자마자 역시나, 말도 없이 사라졌던 것에 화가 난 이와쨩은 쉬지도 않고 나를 갈구고 있었다. 억지로 하하 웃어주고 말장난도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준비 운동이 끝났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1군 멤버들과 연습시합을 했다. 연습시합답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 내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연습 시간이 조금씩 지나갈수록 걱정은 배로 늘어났다. 얼굴은 태연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손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 찼다. 최대한 아닌 척, 평소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이카와!!!”
그렇게 결심하기 무섭게 실수를 해버렸다. 또 한눈을 팔아버렸다. 내가 토스를 올려주었어야 할 공은 이미 바닥에 닿아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왜 올려주지 못했을까,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첫 실수부터 연달아 서브미스, 올려준 토스가 너무 높거나 낮아서 치기 힘들었다는 말, 나로 인해 손발까지 맞지 않게 되어버리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만 포기할 때도 됐는데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나는 계속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토스와 모든 공격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했다. 하늘도 야속하지, 오늘은 죽어도 안 되는 날인가. 계속되는 실수에 감독도, 이와쨩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ㅇ…….”
“한 번 더.”
“그만둬. 여기까지 했으면 됐어.”
이와쨩은 내 어깨를 잡아 돌려 멈추게 한 후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니라고. 난 아직..! 오늘은 무리라고 생각한 감독도 이와쨩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필사적으로 코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설득하려 했다. 이미 내 얼굴을 보고 있지 않던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가보자. 응? 이번엔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만하랬잖아.”
나는 이와쨩의 반응에 조금 몸을 떨었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내 생각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움츠러드는 내 모습에 그는 조금 풀어져 있었다. 그 틈을 놓칠세라 그에게 빌듯이 호소했다.
“이와쨩, 제발….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냥 나갈 테니까.”
이와쨩은 내 말에 놀란 것 같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성공할 때까지 하겠다고 악착같이 몰아붙여서 항상 내가 아닌 이와쨩이 화를 냈다. 제발 그만 하라고, 더 해봤자 안 될 거 뻔히 아는데 몸 혹사하지 말고 쉬라고. 그렇게 화를 내면 나도 같이 욱해서 싸웠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간절했기에 한 번만, 마지막 기회라도 주길 바랐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내게 건네진 볼은 올려졌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실패했다. 허무하게 떨어진 공의 마찰음은 나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줬다. 그걸 바라보는 감독, 이와쨩이나 맛층, 킨다이치, 쿠니미, 하나마키까지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실패할 거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대하게 했다. 이번엔 가능하지 않을까, 이다음엔 기필코,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러한 자기최면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버텨온 것도, 힘든 연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난 이미 실패했고 약속한 대로 코트에서 나와야 했다. 짐을 챙기고 체육관을 나왔다.
“하아, 나와 버렸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너무 분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가라앉히며 교실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이 이렇게 편안하고 마음이 놓이다니, 조금 놀라웠다.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관심과 기대를 받아오다 혼자만의 세상으로 돌아오니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물론 내일 몸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갈 테지만 말이다.
“야.”
“와… 나 방금 환청이 들렸ㅇ, 으악! 이와쨩?!”
갑자기 들렸던 이와쨩의 목소리에 ‘한참 연습 중일 텐데 여기에 어떻게 있어-.’ 하며 몸을 돌리자마자 보이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인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뭘 그렇게 놀래?”
“여, 연습은?”
“맨날 네가 올려주는 공으로 연습하는데 너 없으면 되겠냐? 감독한테 말하고 나왔어.”
“아, 안돼. 빨리 돌아가, 이와쨩.”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멍청아. 너 없으면 못 한다고.”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떨어진 가방을 주워 창가에 가까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억지로 웃어 보였다.
“이런 적 되게 오랜만이다, 그치? 아~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둘만 있으니까 바라볼 사람은 이와쨩 하나로 충분할 텐데,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난 너를 대할 때도 항상 가면을 쓰고 있던 걸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생긴 죄책감이 그의 시선을 피하게 만들었다.
“억지로 웃을 필요 없어.”
“뭐?”
“다른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너와 나 둘뿐인데 숨길 필요 없다고.”
이런 말을 원했던 걸까. 나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숙였다. 더는 웃을 힘도, 거짓말을 할 힘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나를 그동안 가장 많이 봐왔고 가장 신뢰하고 있을 사람은 내 바로 앞에 있는 이와쨩인데. 가까운 친구도 믿지 못하면서 누구를 믿는다 했던 걸까.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와쨩…, 나 이와쨩한테 거짓말했어. 나 전혀 괜찮지 않아. 너무 힘들어. 몸이 너무 무겁고 억지로 웃는 것도 이젠 지쳐버렸어. 나 어떡해?”
결국, 기댈 곳은 이와쨩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해줘도 상관없었다. 한심하다고 욕을 해도, 위로의 말을 건네도 상관없다. 그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면 되는지 묻는 거냐?”
“…….”
“진짜 바보구나.”
“…….”
“어이, 오이카와.”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의 얼굴이 조금만 더 다가오면 나와 닿아버릴 것처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쨩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이와쨩은 자신의 이마를 내 이마에 맞대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엑, 그건 억지잖아.”
“너보고 다 참으라고 한 적 없어. 싫으면 말해. 답답하면 말하고. 짜증 나면 실컷 짜증 내. 울고 싶으면 울어!”
“…….”
“지금 그거, 넌 아무것도 몰라. 뭐 이런 거냐?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화나는 거야. 너만 큰 짐 짊어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데 알았다면서 제자리걸음이냐? 너도 말하고 싶은 거 말하고 하고 싶은 거 해. 바보같이 억지로 참아 손해 보면서 웃지 말고. 참, 특히 나한테는 네가 하는 거짓말 하나도 안 통하니까 다신 할 생각 마라.”
그의 말은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틀린 것 없이 다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나를 더욱 용기 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조금씩 그의 입술로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려 했을 때 이와쨩이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그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몸을 조금 떨었다. 그대로 이와쨩에게 몸을 맡기듯이 팔을 들어 그의 목에 둘렀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이와쨩은 피식 웃으며 한쪽 팔을 내 허리에 둘러왔고 한쪽 팔은 내 목 뒤를 감쌌다. 내가 그의 힘에 못 이겨 몸이 자꾸만 뒤로 가서 창가 선반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읏…. 이, 이와쨩.”
“아, 미안. 조금 셌나.”
“보통 셌어? 거칠다 못해 아팠다구.”
“너무 느리게 오는 게 좀 짜증 나서.”
“분위기 낸거라구..! 분위기 있게!”
“…….”
내가 말을 하자마자 부드럽게 내 턱을 감싸 올리는 그의 손길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마, 눈, 코, 입술. 한 번씩 길게 머물러주었다. 평소 애정표현이라면 질색을 하던 이와쨩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천천히 눈을 떴다.
“ㅇ, 이와쨩, 오늘따라 애정표현 너무 잘해준다.. 아까 화 안 내고 나 말 잘 들어서 그래? 자주 이래도 돼?”
“뭐라는 거야, 망할카와. 오늘 네 생일이니까 서비스해주는 거라고. 다른 날엔 어림도 없어.”
“……알고 있었어?”
“내가 너랑 몇 년째인데.”
“이와쨩…!”
“윽, 알았어. 알았다고..! 숨 막히니까 목 조르지 말고 놔!!!”
나는 그의 말에 감동한 나머지 그의 말을 더 듣지 못하고 꼬옥 껴안았다. 내 최고의 선물이야.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 축하받지 않아도 돼. 나는 그의 품에서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축하는 받아야지. ……생일, 축하해.”
“하하, 그렇네! 이와쨩한테는 받아야지. 정말 고마워, 이와쨩.”
나는 이와쨩 덕분에 오늘 하루 중 최고로 밝게 웃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기 때문인지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또, 그 외의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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