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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세나] 나는 모른다.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_최영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해가 고개를 일찍 들이밀지 않는 어느 겨울날 아침, 아직도 밤이라고 생각했다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몇 시지.”
조금은 이르지만, 아침인지 새벽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시간, 오전 6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도시락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 물론, 내용물은 그렇지 않았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혼자 먹는 아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먹지 않고 등교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배가 고파 신경 쓰여서 일어나게 하였다. 잠도 더 오지 않아 얼떨결에 매일 아침은 챙겨 먹고 나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게 누구 때문인데.”
매일 아침에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도 일상. 집안은 적막할 정도로 텅 비어 있어서 반응할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내심 대답을 기대해버렸다. 자신과는 다르게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런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녀석, 이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썩을 후배. 쯧, 하고 혀를 찼다. 당장에라도 들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고 아침을 먹는 것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어제 사와 다 식어 빠진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먹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지 까마득했다.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앉아있을 자리를 쭉 둘러보다 맨 뒤 구석 자리로 들어가 의자를 뒤로 쭉 빼고 앉아 다리를 책상에 올려 꼬고 있었다. 허벅지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어제 내어준 논문 과제를 유심히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요, 쓰레기.”
“…….”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멍청한 얼굴로.”
“킥, 멍청한 얼굴은 네놈이 자주 짓는 표정 아니었나?”
“아앙-?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주먹을 치켜든 아곤을 지켜보던 애들은 하나같이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였지만 나는 가만히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의 주먹을 멈출 정도라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회 출장은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되는 건가? 널 선수 등록에서 빼버리는 거라든지, 네가 아주 기뻐할 일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터뜨려 줄 수도 있고.”
“이, 개새끼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의자를 발로 퍽 차고 한참 동안 날 죽일 듯이 바라보다 강의실을 나가는 아곤이었다. 어쩌다 이 녀석이 나와 같은 대학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잠깐이라도 나를 흔들어보려던 것 같았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씨익 웃어 보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마치 사냥감을 찾은 맹수의 얼굴이었다면 그 모습을 이해하기 쉬울까. 하지만 그는 겉모습만 맹수였다. 대책 없이 힘만 믿고 달려드는 맹수. 맹수는 한 번 날뛰기 시작하면 제어하기 힘들지만, 잘 구슬리면 쓰임새가 많은 유용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을 잘 알아 왔으니까.
“……히루마군.”
조심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아네자키 마모리.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말을 하려다 말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 고개는 여전히 모니터를 응시한 채 시선만 보냈다.
“넌 왜.”
“아곤군, 저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켁,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되는대로 부수고 다니다가 알아서 연습하러 올 거니까 놔둬.”
“알았어…. 아, 히루마군. 요즘 세나랑 연락 안 해?”
그 녀석은 또 왜. 꼬맹이와 자주 연락하고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네자키에게 듣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 보고 똑똑히 말했다.
“코바야카와 세나 군이 뭐라고 하던가?”
“ㅋ, 코바야카와 세나군…? 요즘 널 통 본적이 없어서 잘 지내냐고 연락했더니 같이 살지도 않는다고 하고. 둘이 꽤 서먹해져 있는 것 같아서.”
내 말에 놀란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가 가까웠다고 그렇게 놀랄 것까지 있나.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 녀석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우리는 끝났다. 더는 사랑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 녀석 쪽에서는.
“쓸데없는 참견 말고 네 일이나 신경 써. 더 듣기 싫으니까.”
여기서도 과제 하긴 틀렸군.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먼저 밀어낸 건 그 녀석 쪽이었는데 왜 그렇게 풀이 죽어서, 더 아파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빌어먹을, 빌어먹을…. 짜증이 솟구쳐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신경이 쓰이지만 당장 그의 얼굴이라도 봤다간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조용한 곳에서 할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환영에게 말을 걸었다.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미련이라도 남았냐? 왜 여기 있는데.”
“선배….”
“하, 미련이 있는 건 내 쪽이지. 넌 매정하게 차고 간 쪽이니까.”
“…….”
“킬킬킬, 돌아가는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널 안아주겠냐.”
그런 표정은 반칙이다, 빌어먹을 꼬맹이. 억지로 웃으며 무설탕 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껌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가 환영이 아닌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멋대로 속을 드러냈다. 하소연이었다. 나를 두고 갔으면 다른 놈들과 행복할 것이지 붙잡고 싶어지게 만드는 건 뭔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감정도, 그 녀석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는 생각보다 태연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아닌 척, 아직도 잊지 못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마음을 뒤로하고 그를 지나쳐 학교를 빠져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세나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테니까.
2016/11/08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_최영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해가 고개를 일찍 들이밀지 않는 어느 겨울날 아침, 아직도 밤이라고 생각했다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몇 시지.”
조금은 이르지만, 아침인지 새벽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시간, 오전 6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도시락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 물론, 내용물은 그렇지 않았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혼자 먹는 아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먹지 않고 등교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배가 고파 신경 쓰여서 일어나게 하였다. 잠도 더 오지 않아 얼떨결에 매일 아침은 챙겨 먹고 나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게 누구 때문인데.”
매일 아침에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도 일상. 집안은 적막할 정도로 텅 비어 있어서 반응할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내심 대답을 기대해버렸다. 자신과는 다르게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런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녀석, 이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썩을 후배. 쯧, 하고 혀를 찼다. 당장에라도 들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고 아침을 먹는 것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어제 사와 다 식어 빠진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먹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지 까마득했다.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앉아있을 자리를 쭉 둘러보다 맨 뒤 구석 자리로 들어가 의자를 뒤로 쭉 빼고 앉아 다리를 책상에 올려 꼬고 있었다. 허벅지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어제 내어준 논문 과제를 유심히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요, 쓰레기.”
“…….”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멍청한 얼굴로.”
“킥, 멍청한 얼굴은 네놈이 자주 짓는 표정 아니었나?”
“아앙-?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주먹을 치켜든 아곤을 지켜보던 애들은 하나같이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였지만 나는 가만히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의 주먹을 멈출 정도라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회 출장은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되는 건가? 널 선수 등록에서 빼버리는 거라든지, 네가 아주 기뻐할 일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터뜨려 줄 수도 있고.”
“이, 개새끼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의자를 발로 퍽 차고 한참 동안 날 죽일 듯이 바라보다 강의실을 나가는 아곤이었다. 어쩌다 이 녀석이 나와 같은 대학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잠깐이라도 나를 흔들어보려던 것 같았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씨익 웃어 보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마치 사냥감을 찾은 맹수의 얼굴이었다면 그 모습을 이해하기 쉬울까. 하지만 그는 겉모습만 맹수였다. 대책 없이 힘만 믿고 달려드는 맹수. 맹수는 한 번 날뛰기 시작하면 제어하기 힘들지만, 잘 구슬리면 쓰임새가 많은 유용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을 잘 알아 왔으니까.
“……히루마군.”
조심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아네자키 마모리.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말을 하려다 말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 고개는 여전히 모니터를 응시한 채 시선만 보냈다.
“넌 왜.”
“아곤군, 저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켁,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되는대로 부수고 다니다가 알아서 연습하러 올 거니까 놔둬.”
“알았어…. 아, 히루마군. 요즘 세나랑 연락 안 해?”
그 녀석은 또 왜. 꼬맹이와 자주 연락하고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네자키에게 듣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 보고 똑똑히 말했다.
“코바야카와 세나 군이 뭐라고 하던가?”
“ㅋ, 코바야카와 세나군…? 요즘 널 통 본적이 없어서 잘 지내냐고 연락했더니 같이 살지도 않는다고 하고. 둘이 꽤 서먹해져 있는 것 같아서.”
내 말에 놀란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가 가까웠다고 그렇게 놀랄 것까지 있나.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 녀석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우리는 끝났다. 더는 사랑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 녀석 쪽에서는.
“쓸데없는 참견 말고 네 일이나 신경 써. 더 듣기 싫으니까.”
여기서도 과제 하긴 틀렸군.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먼저 밀어낸 건 그 녀석 쪽이었는데 왜 그렇게 풀이 죽어서, 더 아파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빌어먹을, 빌어먹을…. 짜증이 솟구쳐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신경이 쓰이지만 당장 그의 얼굴이라도 봤다간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조용한 곳에서 할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환영에게 말을 걸었다.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미련이라도 남았냐? 왜 여기 있는데.”
“선배….”
“하, 미련이 있는 건 내 쪽이지. 넌 매정하게 차고 간 쪽이니까.”
“…….”
“킬킬킬, 돌아가는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널 안아주겠냐.”
그런 표정은 반칙이다, 빌어먹을 꼬맹이. 억지로 웃으며 무설탕 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껌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가 환영이 아닌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멋대로 속을 드러냈다. 하소연이었다. 나를 두고 갔으면 다른 놈들과 행복할 것이지 붙잡고 싶어지게 만드는 건 뭔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감정도, 그 녀석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는 생각보다 태연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아닌 척, 아직도 잊지 못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마음을 뒤로하고 그를 지나쳐 학교를 빠져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세나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테니까.
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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